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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버려진 신발
07/18/20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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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신발이 길가에 버려져 있는 걸 가끔 보았다.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버려졌든, 발에 안 맞는 신발이라 불편해 버려졌든,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상황인식을 하는데는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느낌의 방향이나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긴 할테지만.

볼품없이 해진 등산화가 카미노 안내표지석 위에 얌전히 모셔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충복처럼 따랐던 당나귀 떠나보내며 감사한 마음 담아 땅에 고이 안장시키듯

고마웠노라 말 대신 신발 안에 들꽃 골고루 꽂아놓기까지다. 

그간 함께 걸으며 고락을 같이 한 닳고 낡은 헌신발을 누군가는 길가 나무허리에 공들여 단디 매어 두었다.

진창길 돌팍길 마다않은 노고 인정하며 이젠 편히 쉬라는 배려같기도 하였다. 

도시에서도 더러 눈에 띄듯 양쪽 신발끈 서로 묶어 높직한 전깃줄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기도 했다.

몇번인가 건공중에 신발을 던지며 그동안 수고 많았으니 하늘나라에서 푹 쉬렴, 외쳤을까.

아주 멀쩡한 청색 운동화가 길가 풀섶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걸 본 순간 기분이 착찹해졌다.

새 신이나 진배없는 운동화인데 왜 버려졌을까.

혹 발에 적응이 안돼 뒷꿈치를 아프게 했거나 너무 꼭 맞아 발가락에 물집이 부풀어 올랐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요즘 사람들 물자 중히 여기지 않는다해도 그렇지

새 것에 가까운 신발을 무슨 사연있어 그야말로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쳤나 궁금했다.

긴히 필요해서 값 지불하고 일부러 산 구매품이라도 괜한 짐이나 된다면 카미노 길에선 버릴 수도 있긴하나. 

그럼에도 여러 생각들이 교차됐던 까닭은 간편화건 등산화건 마찬가지로,

버려졌어도 놓여진 상태에 따라 어떤 자리매김 내지는 어떤 의미의 신발이었는가가 읽혀졌기 때문이다.

길 옆 도랑에 내버려져 몰골 사납게 썩어가는 신발은 하도 심란스러워 사진에 담기도 싫었다.

곰팡이 슨 지하 쪽방에서 살다가 여생 비참하게 마감한 노인 뒤늦게 발견했다는 뉴스같아서. 

  가족들에게 외면당한 노후가 초라하고 쓸쓸해 팔자타령이나 하며 신세한탄하는 사람들,

과연 아비로써 어미로써 나아가 사회구성원으로써 지탄받지 않을만큼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제 기분대로 허랑방탕하며 무책임하게 산 부모 늙어 종당엔 자식들에게 버림받아도 양심상 할 말이 없을 터다.

쥐도 낮짝이 있다했거늘 아무리 뻔뻔하다해도 내세울 면()이나 염치가 없을 것이다.

평소 잘 살아야 잘 늙는다는 말이 있는데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얼굴에 주름 하나 없으면 나이보다 젊다느니 곱게 나이들었다 하나,

잘 늙는다는 것은 외적 문제가 아닌 내적 개념으로 차원이 영 다르다.

자녀들은 물려받을 부모 재산 엄청나면 망나니 부모일지언정 아무런 문제삼지 않더라,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데 내적 개념 운운하며 윤리책에나 나오는 잠꼬대같은 헛소리 작작하라고?

과연 그럴까, 효용가치로 따져도 수중에 돈푼깨나 있으면 결코 염려할 바 아니라고? 천만에 말씀이다. 

수백억대 재산 자손에게 남겼어도 죽어 저승가서조차 부모대접 옳게 못 받는 사람 주위에도 있었다.

공(功)은 쌓은대로 간다 하였듯, 할 수 있는 자기 능력껏 분수껏 최선 다해 살았다면

슬하에서 바른 본 보고 듣고 자란 자녀들 절로 부모 공경하는 효자 효녀되고 반듯한 사회인 될게다.

한번 주어진 생, 그러니 바르게 처신 잘 해야하 성심성의껏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다.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누구나 살다보면 한순간 실수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허나 같은 실수, 같은 잘못을 거듭 되풀이할 경우 신이 아닌 이상 참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실 남의 티는 귀신같이 잡아내도 자신의 허물은 모른다고 그래서 제 발치를 자주 내려다보라했던가.

이 대목에 이르면 그만 목 움추러들며 말이 궁해진다.

때가되면 언젠가 낡아 못쓰게 될 신발, 하찮은 대우받으며 쓰레기로 전락해 하릴없이 썩기보다는

꽃씨 보듬어 생명 키워내서 꽃잎 피어나게 하는 참한 화분될 수 있다면 좀 좋을까.

꽃을 품어 가꾸는 사람들, 혼탁한 물 정화시키는 사람들이 다수여야 그래도 희망있는 사회일테니.


<중천 높이 뜬 만월따라 걸었던 어느 여로에서 만난 등산화에는 맨드라미 가득 >

<잠시 풀밭에서 쉼을 갖는, 한달여 날마다 나를 싣고 다닌 트래킹화>

버려진 신발, 허랑방탕,꽃이 담긴 등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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